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이게 끝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네요. 큰 사건도 없고, 갈등이 폭발하지도 않고, 눈물 쏙 빼는 장면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게 됐어요. 뭔가 놓치면 안 될 감정이 방금 지나간 것 같았거든요. 짐 자무쉬 감독 특유의 느릿하고 건조한 연출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했어요. 하지만 패터슨은 그중에서도 유독 조용하고, 담백하고, 생활에 가까운 영화였네요. 뉴저지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주일. 이 단순한 설정 하나로 영화는 끝까지 가요.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 자신의 하루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었죠. 이 영화는 특별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조용히 건네는 작품이었어요. 그게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네요.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 숨은 리듬
패터슨의 하루는 거의 복사 붙여 넣기 수준이에요.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버스를 몰고, 같은 바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와요. 이 반복이 처음엔 단조롭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리듬처럼 느껴졌네요. 마치 잘 짜인 시의 운율 같았어요. 짐 자무쉬는 이 반복을 전혀 숨기지 않아요. 오히려 더 강조해요. 관객이 지루해질까 봐 걱정하기보다는 이게 삶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미세한 차이들이 있거든요. 버스 안에서 나누는 승객들의 대화, 거리에서 마주치는 풍경, 집에 돌아왔을 때의 공기 같은 것들요. 이 반복 속에서 패터슨은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안정돼 있었고,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네요. 그게 이 영화의 첫 번째 위로였어요.
말없는 주인공과 시가 대신한 대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건 주인공이 정말 말을 아낀다는 점이에요. 패터슨은 자기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요. 대신 시를 써요. 아주 짧고 소박한 시들. 성냥, 폭포, 일상의 사물들이 그의 언어가 되죠. 그 시들이 대단히 문학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어요. 오히려 나도 이런 생각해봤는데 싶은 문장들이 많았네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이 영화가 말하는 창작은 거창한 재능이나 인정이 아니라, 관찰하고 기록하는 태도에 가까웠어요. 패터슨은 자신의 시를 세상에 알리려고 애쓰지 않아요. SNS에 올리지도 않고, 출판을 꿈꾸지도 않죠. 그저 쓰고, 접고, 주머니에 넣어요.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존중받아야 할 삶처럼 느껴졌네요. 요즘처럼 뭐든 보여줘야 하는 시대에 더더 욱요.
사랑과 일상, 그리고 소소한 균형
로라와의 관계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어요. 두 사람은 전형적인 영화 속 커플과는 많이 달랐네요. 큰 갈등도 없고, 극적인 화해도 없어요. 대신 사소한 대화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쌓여 있어요. 로라는 늘 새로운 걸 시도해요. 기타를 치고, 컵케이크를 굽고,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죠. 패터슨은 그런 로라를 말없이 지지해요. 비웃지도, 제지하지도 않아요. 그저 좋아 보이네 하고 받아들이죠. 이 관계가 참 건강해 보였어요. 이 영화는 사랑을 불꽃처럼 그리지 않아요. 대신 매일 켜두는 조명처럼 그려요. 눈부시진 않지만, 없으면 불편한 그런 존재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마음이 편해졌네요.
마치며,
패터슨(2016)은 보고 나서 추천하기가 조금 어려운 영화예요.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설명하기 쉬운 줄거리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권하게 되는 영화였어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히 마음이 복잡하다는 날에 특히요. 이 영화는 성공하라는 말도,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도 하지 않아요. 대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것 같았네요. 그 질문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아마 시간이 지나 다시 본다면 또 다르게 느껴질 영화일 거예요. 그때의 나의 일상에 따라, 이 영화의 온도도 조금씩 달라질 것 같거든요. 그래서 패터슨은 한 번 보고 끝내기엔 아까운 영화였네요. 조용히, 천천히, 삶 옆에 두고 싶은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