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패신저스(2016)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우주 배경의 로맨스 영화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제니퍼 로렌스와 크리스 프랫이라는 조합만 봐도 이미 흥행 공식은 갖춘 듯 보였고요.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 작품은 단순한 SF 로맨스가 아니었네요. 오히려 굉장히 불편하고, 동시에 인간적이어서 계속 생각이 나는 영화였어요. 패신저스는 미래 사회, 수천 명의 승객이 냉동 수면 상태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우주선에서 시작돼요.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인간의 개입이 거의 필요 없는 완벽한 시스템이죠.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예기치 못한 각성으로 이 완벽한 미래는 균열을 일으켜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묻기 시작했어요. 만약 당신이라면, 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고요.
완벽한 미래 사회, 그러나 너무 인간적인 실수
패신저스의 배경은 기술적으로 보면 거의 유토피아에 가까워요. 우주선 아발론은 사람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시스템이고, 인공지능 바텐더부터 자동 의료 장치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였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한 시스템을 무너뜨린 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었네요. 짐 프레스턴이 혼자 깨어난 채 수십 년을 살아야 한다는 설정은 굉장히 잔인하게 다가왔어요. 아무도 없는 우주선, 끝없는 시간,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이 고립감은 화면 너머로도 충분히 전해졌고요. 그가 점점 무너져 가는 과정은 이해가 되면서도, 동시에 불안했어요. 영화는 이 지점에서 관객에게 섣부른 판단을 허락하지 않아요. 이해는 되지만, 정당화할 수는 없는 회색 지대를 계속 유지하거든요.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택, 공감과 불편함 사이
이 영화가 가장 논쟁적인 이유는 바로 짐의 선택이었죠. 오로라를 깨운 행위는 명백히 이기적인 결정이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에는 너무 잔인했어요.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계속 마음이 복잡해졌네요.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거든요. 오로라의 분노와 절망은 너무 당연해서 더 아팠어요. 자신의 미래, 꿈, 인생 전체를 누군가의 외로움 때문에 빼앗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감정적으로 꽤 무거웠네요. 그런데도 영화는 이 관계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남겨두지 않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이 함께 생존하고, 선택하고, 결국 사랑에 대해 다시 정의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줘요. 그게 불편하면서도 인간적이었어요.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감정이 계속 남았네요.
패신저스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패신저스는 겉으로 보면 로맨스와 SF의 결합이지만, 그 속에는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 숨어 있어요. 외로움은 어디까지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랑은 과연 모든 선택을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죠.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결말에 이르러서도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관객에게 판단을 넘겨버리죠.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상을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로맨틱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불쾌했다고 말해요. 그 다양함 자체가 이 영화의 가치라고 느꼈어요.
마치며,
패신저스(2016)는 완성도 면에서 완벽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서사 구조나 캐릭터 선택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히 존재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쉽게 잊히지 않네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두려워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잖아요. 패신저스는 그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아주 극단적인 상황으로 보여줬어요. 그래서 불편했고, 그래서 더 현실처럼 느껴졌네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화려한 우주 장면보다도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남아요. 나는 과연 혼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아마 이 질문 때문에, 패신저스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다시 언급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