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킬 빌(2003)을 다시 꺼내 보는 건 언제나 묘한 일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는 잔혹함이 훅 들어와서 와, 이게 영화로 가능해?라는 충격이 먼저였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단순한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 속에 오히려 삶을 잃어버린 한 여성의 절규가 더 크게 들렸달까요. 퀀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과장된 폭력, 만화적 연출, 그리고 오마주가 뒤섞인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난잡해 보이는데 또 기묘하게 아름답고, 혼란스러운데도 끝까지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어요. 게다가 2003년에 나온 영화인데도 지금 유튜브, SNS, 짤방 문화 속에서 계속 회자되는 걸 보면, 이 작품이 가진 스타일적 매력과 강렬한 이미지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새삼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오늘은 영화 블로거의 시선으로, 조금 더 감정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느낌으로 킬 빌을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검은 코미디와 잔혹함 사이, 타란티노의 폭력의 균형 감각
타란티노 감독은 폭력을 그릴 때 특이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에요. 칼부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딘가 웃기고, 웃기다가도 갑자기 피가 튀어서 당황스럽고 이 양가감정이 <킬 빌>에서는 더더욱 극대화되죠. 특히 오렌 이시이와의 혈투 장면에서 펼쳐지는 광기의 발레 같은 액션은 폭력이 지나치게 잔혹함에도, 이상하게도 미적으로 느껴졌어요.이게 참 인간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보고 있는 동안엔 아 타란티노가 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묘한 쾌감이 있었네요. 물론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호불호가 갈리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폭력의 과장이 영화 전체를 하나의 만화적 세계로 끌어올려서, 현실의 잔혹함이 아니라 스타일의 영역으로 편입된다는 점이 참 흥미롭더라고요. 이 영화가 단순 피 튀는 액션을 넘어 하나의 예술적 텍스처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브라이드의 감정선 - 복수보다 더 고통스러운 잃어버린 삶
많은 분들이 킬 빌을 복수의 여정으로 기억하지만, 저는 볼 때마다 주인공 브라이드의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단순히 당했다 복수한다의 구조가 아니라, 그녀가 삶 자체를 다시 잡아오는 과정이 담겨 있거든요. 결혼식 날에 모든 걸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산산조각 나고, 그녀는 4년의 시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깨어났죠.이런 사실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보면, 그녀의 분노가 단순히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힘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나의 선택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회상 장면들은 그녀의 감정선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줬어요. 폭력과 액션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녀의 고통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 오히려 브라이드가 괴물처럼 보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걸 느끼게 해줬네요. 복수의 칼을 들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감정적 깊이가 더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스타일의 향연 - 장르 영화의 레퍼런스를 뒤바꾼 타란티노의 실험
타란티노가 킬 빌에서 보여준 스타일은 솔직히 말해 욕망 분출 그 자체였어요. 동양 무협물, 일본 야쿠자 영화, 70년대 미국 B급 액션, 애니메이션까지 갖고 싶은 건 전부 가져와서 섞어버렸죠. 그런데 이 조합이 이상하게도 굉장히 조화롭다는 점이 참 놀랍더라고요.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는 오렌 이시이의 과거 서사는 지금 봐도 정말 충격적이에요. 장면 전환의 호흡, 색감의 대비, 그리고 오마주 된 음악들까지 하나하나가 냉정하면서도 아름답게 구성돼 있었어요. 영화를 분석한다기보다 감각적으로 흡수되는 장면들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요소들이 쌓이면서 킬 빌은 단순 액션영화가 아니라 장르 실험의 총집합이 되었고, 그래서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타란티노가 보여준 스타일의 폭발력은 여전히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네요.
킬 빌이 20년이 지나도 살아남는 이유
다시 보니 킬 빌은 단순한 복수극도, 단순한 액션영화도 아니었어요. 인간의 상실과 분노, 그리고 삶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이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된 감정의 영화였어요. 잔혹함과 유머가 뒤엉켜 있고, 미장센과 폭력이 기묘하게 하나의 스타일로 묶여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중심에는 사람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더라고요.20년이 지났는데도 킬 빌의 이미지가 여전히 낡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스타일과 감정의 조합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타란티노 특유의 무질서한 예술적 감각이 이제 와서 더 귀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다시 보기만 해도 묘하게 힘이 나는, 그런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