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어(The Core, 2003)는 개봉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다시 봐도 참 묘한 영화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과학적으로 말이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었네요. 그런데도 이 영화가 왜 아직까지 회자되는지, 다시 보고 나서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지구의 핵이 멈추면서 자기장이 붕괴되고, 인류가 멸망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 그리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지구 중심까지 내려가는 사람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과감하고 무모한 상상력이었어요. 하지만 그 무모함이야말로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 재난 영화가 가진 에너지였네요. 이 영화는 완벽해서 기억에 남은 게 아니라, 오히려 허술해서 더 오래 남아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영화 블로거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 졌네요.
과학 재난 영화의 탈을 쓴 인간 드라마
코어를 단순한 SF 재난 영화로만 보면 아쉬웠어요. 영화 속에는 의외로 사람 이야기가 꽤 많이 들어 있었네요. 지구를 구하기 위한 미션이 중심이긴 하지만, 그 안에 각자의 상처와 신념을 가진 인물들이 계속 부딪히고 있었어요. 특히 아론 에크하트가 연기한 과학자 캐릭터는 전형적인 영웅이라기보다는, 실패와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졌어요.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공감이 갔네요. 힐러리 스웽크가 연기한 우주비행사 역시 강인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팀의 균형을 잡아줬어요.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택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점을 이 영화는 계속 보여주고 있었어요. 그게 코어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였네요.
말도 안 되는데 이상하게 몰입되는 설정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과학적 오류를 빼놓을 수는 없어요. 지구 중심으로 내려가는 드릴, 핵을 재가동시킨다는 발상, 내부 온도와 압력을 견디는 우주선 같은 설정들.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감했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동안 이건 말이 안 되니까 그만 봐야지라는 생각은 잘 안 들었어요. 오히려 그래, 여기서는 이런 세계관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영화가 초반부터 끝까지 자기만의 룰을 꽤 일관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었어요. 이건 코어가 현실적인 과학 영화가 아니라, 재난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이었네요. 관객에게 정확한 과학 지식을 전달하려 했다기보다는, 과학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스펙터클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려 했던 영화였어요. 그 점에서는 목적에 꽤 충실했네요.
2000년대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낭만
코어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느꼈던 건, 아, 이게 그 시절 영화구나라는 감정이었어요. CG는 지금보다 투박했고, 연출은 다소 과장됐고, 음악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끌어올렸네요. 그런데 그 모든 게 오히려 반가웠어요. 요즘 재난 영화들이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 반면, 코어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어요. 희생은 분명했고, 대사는 때때로 유치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네요. 모두가 지구를 구하겠다는 단순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어요. 이 영화에는 그래도 인간은 해낼 거야라는 낙관이 담겨 있었어요. 지금 시대의 영화들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의 낙관이었네요. 그래서 더 그리웠고, 그래서 다시 보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치며,
코어(The Core, 2003)는 완성도 높은 명작이라고 말하기는 솔직히 어려운 영화였어요. 허술한 설정도 많았고, 과장된 연출도 분명 존재했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묘하게 사람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내려간다는 설정은 결국, 인간의 두려움과 희망을 가장 극단적인 장소로 밀어 넣은 장치처럼 느껴졌어요. 실패할 걸 알면서도 시도하고, 돌아오지 못할 걸 알면서도 선택하는 사람들. 그 모습이 재난 영화라는 틀 안에서 꽤 진하게 남았네요. 그래서 코어는 다시 봐도 재밌었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영화였어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인간적이었고, 어설퍼서 더 진심처럼 느껴졌네요. 가끔은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산되지 않은 열정, 과장된 희망, 그리고 조금은 무모한 용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