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느 가족(2018)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말하면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어요. 울게 만들지도 않았고, 극적인 장면이 몰아치지도 않았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생각이 났어요. 며칠 뒤, 혼자 밥을 먹다가도 장면 하나가 떠올랐고, 길을 걷다 문득 아이 손을 잡은 어른을 보며 이 영화가 스쳤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늘 그렇듯 조용했어요. 설명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감정을 밀어붙이지도 않았네요. 대신 그냥 보여줬어요. 그리고 판단은 온전히 관객에게 맡겼죠. 그래서 이 영화는 보는 동안보다, 보고 난 뒤에 더 무거워졌어요. 가족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네요.
가족은 피로만 만들어지는 걸까
어느 가족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왔던 가족의 공식이에요. 혈연, 혼인, 법적 관계. 영화 속 인물들은 이 기준 어디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아요. 그런데도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하루를 나누고, 서로의 체온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었네요. 서툴고 어설픈 방식이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은 분명 존재했어요. 누군가는 거짓말을 했고, 누군가는 숨겼으며, 누군가는 틀린 선택을 했죠. 그래도 그 안에는 함께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영화는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었네요. 그래서 더 헷갈렸어요. 이들이 정말 가족이 아니라면, 우리가 믿어온 가족의 기준은 과연 옳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가난 앞에서 선택지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범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범죄가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어요. 이들은 악당처럼 그려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피해자로만 소비되지도 않네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이었어요. 훔치는 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그 선택 말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던 순간들. 영화는 그 지점을 조용히 비춰요. 음악도, 과장된 연출도 없이 말이죠. 그래서 더 냉정하게 다가왔어요. 사회는 가난을 설명하려 들지 않아요. 대신 판단하죠.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 판단의 시선이 점점 차갑게 느껴졌어요. 관객인 나 역시 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네요. 그래서 더 불편했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어요.
아이를 보호한다는 말의 불편한 진실
어느 가족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워졌던 건 아이들의 존재였어요. 어른들의 선택 속에서 너무 일찍 세상을 배워버린 아이들.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네요. 영화는 아이를 단순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아요. 동시에 완전히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도 만들지 않죠. 그저 그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었어요. 보호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들었네요. 법적으로 옳은 선택과, 감정적으로 옳다고 느껴지는 선택이 완전히 어긋나는 순간들. 영화는 그 간극을 애써 메우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의 마음에 더 깊은 질문을 남겼어요.
마치며,
어느 가족(2018)은 보고 나서 명확한 감정을 남기지 않는 영화였어요. 대신 찜찜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남았네요. 누군가를 완전히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를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어요. 이 영화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어요. 가족, 책임, 보호, 사랑. 그 단어들이 사실은 얼마나 복잡한지 말이죠. 조용히 시작해서 조용히 끝나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말을 거는 영화였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았네요. 아마 다시 본다면,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그 점이 이 영화를 더 좋은 영화로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