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아바타: 물의 길을 보기 전까지 반신반의했어요. 1편이 개봉한 게 무려 2009년이었고, 그 사이 영화 기술도 관객의 눈높이도 엄청나게 달라졌잖아요. 과연 지금 다시 아바타가 통할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네요. 그런데 극장 불이 꺼지고, 화면에 판도라의 바다가 펼쳐지는 순간, 그런 걱정은 좀 무색해졌어요. 이야기가 새롭다기보다는, 경험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 영화는 줄거리를 따라가는 영화라기보다는, 3시간 동안 어떤 세계에 잠수했다가 나오는 영화에 가까웠네요.
시각적 진화의 끝판왕 - 바다는 어떻게 감정이 되었나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역시 비주얼이에요. 제임스 카메론은 여전히 집요했고, 여전히 고집스러웠어요. 특히 바다 표현은 정말 이건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수준이었네요. 단순히 물이 예쁘다, 생물이 신기하다는 차원이 아니었어요. 바다는 이 영화에서 하나의 감정 덩어리처럼 느껴졌어요. 잔잔할 땐 평온했고, 분노할 땐 위협적이었고, 슬플 땐 묘하게 차가웠네요. 화면을 보고 있는데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CG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했어요. 오히려 이 정도면 현실이 CG를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네요.
가족 이야기로 바뀐 아바타 - 제이크 설리의 선택
1편의 아바타가 식민지, 침략, 자연 파괴 같은 거대한 담론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물의 길은 훨씬 개인적이고, 훨씬 가족적인 이야기였어요. 제이크 설리는 이제 전사가 아니라 아버지였고, 지도자가 아니라 보호자였어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고, 부족을 떠나고, 자존심을 내려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이 변화가 호불호를 나눴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선택이 꽤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보다, 내 가족 하나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이 영화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이크의 선택들이 답답하면서도 이해가 갔네요. 현실에서도 우리는 늘 그런 선택 앞에 서 있으니까요.
느림의 미학,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자 특징은 바로 느림이에요. 분명히 느려요. 설명도 많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장면도 길고, 서사도 천천히 흘러가요. 요즘 빠른 편집과 강한 자극에 익숙한 관객에겐 솔직히 지루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이 느림이 오히려 이 영화의 정체성이라고 느꼈어요. 바다에서 숨 쉬는 법을 배우듯이, 영화도 관객에게 천천히 보라고 말하는 느낌이었어요. 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장면 하나하나를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네요. 물론 모두에게 통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히 극호와 극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긴 것
아바타: 물의 길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어요. 이야기는 예측 가능했고, 캐릭터도 전형적인 부분이 있었네요.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상하게 오래 여운이 남았어요. 아마도 이 영화는 잘 만든 이야기라기보다는, 강하게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극장을 나서면서 바다를 다시 보고 싶어 졌고, 자연을 조금 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모든 영화를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영화는 한 번쯤 직접 느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보면 반감될 수 있지만, 극장에서라면 분명히 다른 기억으로 남을 영화였네요.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다시 한번 묻고 있었어요. 우리는 어디까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