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를 다시 보면, 묘하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스치듯 겹쳐지더라고요. 처음엔 단순한 디스토피아 SF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사람을 꽤 오래 붙잡아두는 힘이 있네요. 기차라는 닫힌 구조 속에서 계급, 폭력, 생존, 인간성까지 한꺼번에 꺼내놓는데, 그게 너무 생생해서 아 불편하다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달리는 기차는 멈추지 않지만, 그 안의 인간성은 계속 흔들리고 무너지고, 때로는 또 믿고 싶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분석한다기보다, 그냥 제 경험을 말하듯 풀어가 보려고 해요.
꼬리칸의 현실 - 절망에서 태어난 혁명
영화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꼬리칸이죠. 햇빛 한 줄기조차 없이, 먹는 것도 부족해서 protein bar조차 고맙게 받아야 하는 공간.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너무 현실적이라서였겠죠. 실제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기회가 처음부터 막혀버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낙오자로 취급되잖아요. 그래서 커티스가 꼬리칸 사람들을 이끌고 앞칸으로 진격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절망에서 태어난 마지막 용기처럼 느껴졌어요.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무모함마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제가 이 장면에서 느꼈던 건 혁명은 거창하지 않아도 돼, 그냥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때도 있어라는 말이었어요.
중간칸의 민낯 - 시스템 속에서 길을 잃는 인간들
앞칸으로 갈수록 우리는 상위 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죠. 그런데 그들이 마냥 여유롭고 행복한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시스템이 부여한 역할 속에 갇혀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어요. 특히 학교칸 장면은 정말 기괴하면서도 현실적이었어요. 주입식 교육, 선전, 특정한 질서 유지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익숙한 장면 아닐까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엔진을 찬양하는 모습에서, 기분이 묘하게 서늘해졌어요. 중간칸의 사람들은 겉보기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힌 또 다른 희생자처럼 느껴졌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이런 중간칸에서 헤매는 기분, 다들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나요? 뭔가 안정되었지만 자유롭진 않고, 풍족하지만 만족스럽진 않은 삶. 이 영화는 그 모순을 정말 날카롭게 찔러요.
엔진의 진실 - 질서라는 이름의 폭력
엔진칸은 마치 성역처럼 그려지죠. 절대적인 질서, 절대적인 권력, 절대적인 논리. 윌포드가 보여주는 말들은 하나하나 합리적이고 심지어 논리적이기까지 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왜냐하면 그 논리가 너무 차갑고, 너무 잔인해서였어요.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유지된다. 이 대사를 들으면 묘하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정당화의 언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잖아요. 커티스가 엔진 앞에서 모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가 흔들리는 모습이 저는 너무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선택지가 둘 뿐인 상황에서 누가 쉽게 답을 찾을 수 있겠어요. 혁명가이면서도, 결국 그도 인간이니까요. 그 장면에서 커티스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약점과 갈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오히려 더 마음을 끌었어요.
결국 설국열차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네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설국열차는 사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비유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급, 특권, 교육, 시스템, 희생, 혁명 모든 게 너무 현실적이어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기차가 아니라 사회 그 자체구나 싶었네요.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와 나미가 칼바람 속에서 흰곰을 마주 보는 순간, 희망이라는 게 뭐였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됐어요. 기차 밖의 세계는 위험하고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기차 안에서의 가짜 안정보단 나은 현실일 수도 있겠다고요.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했어요.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멈추는 순간, 시스템은 우리를 잡아먹을 테니까. 그래서 설국열차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보고 싶어지는 영화였어요.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게, 아마도 이 영화가 진짜 명작이라는 증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