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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미제라블(2012) 구원, 정의, 혁명의 노래

by 2-nus 2025. 12. 10.

영화-레미제라블-포스터
영화-레미제라블-포스터

영화 레미제라블(2012)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마치 거대한 파도에 삼켜졌다가 겨우 숨을 고르며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노래한 줄 한 줄이 배우의 몸을 뚫고 나온 울음처럼 들리더라고요. 이 작품은 단순히 뮤지컬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밑바닥의 감정과 희망을 그대로 꺼내 놓은 기록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이 영화는 라이브 싱잉 방식을 선택하면서 배우들의 감정과 떨림을 숨김없이 보여주는데, 그 덕분인지 관객도 어느 순간 숨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아, 이건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고통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삶을 다시 선택한 남자, 장발장의 고독한 구원 여정

장발장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굳게 닫힌 세상 속에서 버틴 인간처럼 보였어요. 차갑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그는 나는 누구인가(I Dreamed a Dream)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고 있었죠. 빵 하나 훔쳤다는 이유로 인생의 반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자유를 얻고도 자유롭지 못했어요. 누군가의 시선, 사회의 낙인, 세상에 남은 흉터 때문에 늘 죄책감과 공포를 등에 달고 살아가야 했죠. 하지만 주교를 만난 순간, 장발장은 자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조건적인 용서를 경험했어요.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손끝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뜨거울 수 있다는 걸 장발장이 보여준 거죠. 이후 그는 코제트를 지키고, 고통 속에서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주는 삶을 선택해요. 어쩌면 장발장 스스로도 구원받고 싶었기 때문에, 남을 구원하는 길을 선택했는지도 몰라요.

지켜야만 했던 신념, 자베르의 흔들리는 정의

자베르는 영화 속에서 가장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흔들리는 인물이었어요. 그는 법은 절대적이다, 질서는 곧 정의다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죠. 그래서 장발장이 자꾸 법을 넘어서는 선택을 할 때마다 자베르는 혼란스러웠던 거예요. 특히 자베르가 장발장의 선의를 앞에 두고도 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저는 묘하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는 자신의 신념에 균열이 생긴 순간,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거든요. 그의 노래 Stars는 마치 철로 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울음 같아요. 세상은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죠. 자베르는 악역이라기보다,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안타까운 인간으로 보였어요. 그의 비극은 결국 스스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던 정의의 아이러니였어요.

혁명과 사랑 사이에서, 청춘들의 뜨겁고 짧은 목소리

그리고 이 영화의 심장을 뛰게 한 건 학생들의 혁명이었어요. 그들의 목소리에는 화려한 장식도, 억지 감정도 없었어요. 정말 살아 있는 청춘 그대로였죠.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이 울려 퍼질 때, 저는 그 함성이 단순한 영화 배경음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의 목소리처럼 들렸어요. 어딘가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 사랑을 잃고도 꿈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외침처럼요. 에포닌의 On My Own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고독하고 아름다운지 한 문장도 빠짐없이 보여줬어요. 그녀는 사랑을 얻지 못해도, 사랑을 선택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더 짧고 더 슬프고 더 빛났죠. 청춘들의 혁명은 결국 실패했지만, 그들이 남긴 건 패배가 아니라 미래의 불씨였어요. 레미제라블이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비록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바뀌었기 때문이죠.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이어지는 길

레미제라블(2012)은 단순히 뮤지컬 영화의 명작이라는 말을 넘어서요. 이 영화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지만, 동시에 얼마나 강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 같아요. 장발장의 용서, 자베르의 비극, 학생들의 뜨거운 목소리 모든 장면이 지금 우리에게도 말하고 있어요. 절망 속에서도 계속 걸어야 한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저기 끝에서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 영화를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묵직해지고, 또 묘하게 가벼워지죠. 슬프지만 희망이 있고, 절망스럽지만 여전히 걸어갈 이유가 남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