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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랑블루(1988) 고독, 경쟁, 그리고 사랑

by 2-nus 2025. 12. 21.

영화-그랑블루-포스터
영화-그랑블루-포스터

어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잘 몰랐어요. 대사가 많지도 않고,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는 영화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시 (그랑블루)를 보니, 이 영화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기보다 잠기게 만드는 작품이더라고요. 1988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면은 지금 봐도 낡지 않았고, 음악은 여전히 가슴을 두드렸어요. 이건 스포츠 영화도 아니고, 전기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로맨스도 아니었네요. 오히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였어요. 루치오 풀치가 아닌 뤽 베송 감독 특유의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죠. 인간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 숨을 참아야만 살아남는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오히려 가장 자유로워 보였어요. 이상했죠. 숨을 쉬지 못하는데, 더 살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바다를 사랑한 남자들 - 인간보다 깊은 고독

자크와 엔조는 바다를 사랑했어요. 그런데 그 사랑의 방식이 조금 달랐죠. 엔조는 기록과 경쟁을 사랑했고, 자크는 그냥 바다 자체를 사랑했어요. 자크는 말이 없고, 감정 표현도 서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잘 몰랐네요. 대신 바다에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그곳에서는 숨을 오래 참는 게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해 보였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느껴졌던 건 자크의 고독은 불행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는 인간 세계보다 바닷속이 더 진짜 같았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어져요. 이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원래 불가능하니까요.

경쟁과 집착 사이 - 숨을 멈춘 삶의 방향

엔조는 자크와 달랐어요. 그는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했고, 최고가 되고 싶어 했죠. 그래서 자크를 라이벌로 만들었어요. 사실은 친구였는데 말이에요. 자유다이빙이라는 종목 자체가 그렇잖아요. 기록을 세울수록 더 위험해지고, 더 내려갈수록 돌아오는 길은 길어져요. 이 영화에서 경쟁은 멋있게 그려지지 않아요. 오히려 집착처럼 보여요. 숨을 참는다는 행위가 상징적으로 느껴졌어요. 참아야 하는 삶, 말하지 못한 감정, 끝내 터뜨리지 못한 욕망 같았거든요. 그래서 엔조의 선택은 위대하면서도 슬펐어요. 이기고 싶었지만, 그 이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으니까요.

조용한 사랑의 방식 - 이해받지 못한 감정

조한나라는 인물은 이 영화에서 굉장히 현실적인 존재였어요. 우리가 흔히 보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이죠. 자크를 사랑했지만,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아니,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끝내 닿지 못했어요. 자크의 사랑은 따뜻하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네요. 하지만 거짓은 아니었어요. 그는 조한나를 사랑했지만, 바다를 더 사랑했어요. 이건 잔인한 고백처럼 들리지만, 영화는 그걸 비난하지 않아요. 그냥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에요. 그래서 이 로맨스는 더 아프게 남아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세계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 조용하게 말해주거든요.

왜 우리는 아직도 그랑블루를 이야기할까

(그랑블루)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예요. 줄거리만 말하면 심심하고, 메시지를 요약하면 빠져나간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이 영화는 이해하는 작품이 아니라, 느끼고 각자 다르게 기억하는 영화였네요.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남고, 어떤 사람에게는 집착의 비극으로 남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해받지 못한 사랑의 기록으로 남아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야기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바뀔 때마다, 삶의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니까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바다로 내려가는 자크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슬펐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했어요. 아마 그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감정일 거예요. 슬픔과 자유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모순 같은 진실 말이에요. 이 영화, 한 번 보고 끝내기엔 너무 깊었네요.